뚝뚝을 타고 시엠립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가려면 보통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을 경유한다. 캄보디아 항공사인 스카이앙코르가 운영하는 직항편이 있지만 운임이 비싼 편이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의 저가항공사(LCC)들이 취항(직항)을 신청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시엠립에 들어가는 관문은 시엠립 국제공항이다. 2023년 10월 새롭게 문을 연 시엠립 국제공항은 이전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현대적이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이전 공항은 시내에서 가까워 이동은 편리했지만,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어려웠고 소음 문제도 컸다고 한다. 새로운 공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어졌다. 비자 발급부터 입국 수속까지는 빠르게 진행됐고, 예전에는 관행처럼 요구되던 1달러짜리 급행료도 사라졌다. 다만 가끔 단체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가 급행료를 빌미로 새치기를 유도해 개인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급행료를 내고 먼저 들어가 봤자 5~10분 정도 차이 날 뿐이다.
시엠립 앙코르 국제공항. 중국 기업이 투자하여 건설하고 운영하다 넘겨주는 BOT방식으로 지었다. 사진=조성진 기자
공항 밖으로 나서자마자 열대 특유의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감쌌다. 공항 터미널 외관은 단아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졌고, 지붕은 앙코르 와트의 다섯 개 탑을 본떠 인상적이었다. 시내까지는 약 50킬로미터 거리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에는 아직 차량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벌판에는 잡초와 이국적인 열대 식물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산이나 구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시엠립과 앙코르
시엠립은 캄보디아 시엠립 주의 주도다. 주 전체 인구는 90만 명, 그중 시엠립 시내에는 약 19만 명이 거주한다. 기후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나뉘어 여행 적기는 건기인 11월부터 4월까지다. 우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자주 오고 습도가 높지만, 대신 초록이 짙고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다.
시엠립 시내. 오른쪽이 시엠립강이다
시엠립 시내는 도보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고, 뚝뚝(Tuk Tuk)이라는 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도 흔히 이용된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뚝뚝이 유용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걸으며 이곳저곳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글 맵에선 도보로 20분이라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마 현지인의 체형과 보폭을 기준으로 측정된 게 아닐까. 유럽에선 구글 맵 속도를 맞추려면 꽤 서둘러야 하니 말이다.
앙코르는 시엠립의 옛 이름이자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오늘날의 시엠립 시내와 앙코르 유적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인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은 뚝뚝을 타고 약 20분 정도 가야 한다.
캄보디아 국기에는 앙코르 와트가 그려져 있다. 국가의 상징이며 관광객들은 앙코르 와트를 통해 캄보디아를 본다
인도문명과 크메르문명
크메르 제국은 802년부터 1431년까지 약 600년간 지속된 고대 왕국이다. 공식 명칭은 ‘캄부차데사’이며, 수도였던 앙코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왕도(王都)’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인도어로,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범어’라고 부른다. 요가도 이 언어로 구성돼 있다. 현재의 크메르 문자는 산스크리트어를 간소화한 문자다.
크메르 문명은 인도 문명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왕국의 발상지인 프놈쿨렌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수미산)’에 해당하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고, 앙코르 와트를 건축하는 데 사용된 돌도 이곳에서 채석됐다. 프놈쿨렌에서 발원하여 시엠립을 가로지르는 강은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성스러운 시엠립강이다. 앙코르는 고대 인도의 성지 아요디야에 비견된다. 크메르인은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인도 문명에 캄보디아 고유의 전통을 융합해 독자적인 앙코르 문명을 창조했다.
만다라(mandala)는 원을 뜻하며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식화된 도형이다. 기본 형태는 사각형의 중심에 원이 있으며 각 변의 중앙에는 한 개의 문이 있다. 앙코르 사원 구조는 만다라에서 가져왔다. 사진=위키미디어
11세기에서 13세기, 왕국의 전성기 동안 앙코르는 70만 명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할 정도로 번영했다. 그 시절 파리는 10만 명, 런던은 7만 명에 불과했다. 당시 앙코르는 예술과 문학의 중심지였고, 무려 200여 개가 넘는 사원이 400㎢의 대지에 세워졌다. 그 방대한 규모는 오늘날에도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사원이 이토록 많이 세워진 이유 중 하나는 왕위계승 다툼 때문이다. 크메르 제국의 스물여덟 명의 왕 중 오직 여덟 명만이 세습으로 왕위에 올랐고, 나머지는 무력이나 정치적 실력으로 왕좌를 차지했다. 왕위 다툼이 있을 때마다 기존 사원이 파괴되거나 새로운 사원이 세워졌다. 왕권의 정당성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431년,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앙코르를 침공하면서 수도는 프놈펜으로 옮겨졌고, 앙코르는 400여 년간 밀림 속에 잠들게 된다. 이후 17세기에 다시 앙코르를 되찾으면서 ‘시엠립’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시엠’은 태국(시암)을, ‘립’은 제압하다는 의미로, 시엠립은 “태국을 제압하다”라는 뜻이다.
앙드레 말로와 화양연화
1860년, 프랑스인 앙리 무오가 앙코르를 탐험하며 쓴 여행기는 유럽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1930년,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자신의 앙코르 체험을 바탕으로 《왕도로 가는 길》을 출간했다. 1931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앙코르 와트의 건축물이 재현되면서, 크메르인을 야만적으로 보던 유럽 대중에게 큰 문화적 충격과 경외심을 안겼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앙코르 와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시엠립은 글로벌 관광지로 거듭났다.
1931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세워진 앙코르 와트 사진=위키미디어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양조위는 앙코르 와트 사원에 홀로 서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밀과 속마음을 돌기둥의 구멍에 봉인하는 장면은 많은 이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도시는 영화처럼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해석되지 않은 비밀이 너무도 많고, 그래서인지 쉽게 떠나기 어려운 도시다. 앙코르, 헤어질 결심이 어려운 마법 같은 장소다.
<연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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