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 사진=조성진 기자
아무런 계획이나 일정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준비한 후에 여행지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인생이란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 참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후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원칙 하에 한번 가면 다시 오기 힘들지 않겠냐 하며 가능하면 제대로 알고 떠나자는 쪽이다.
어느 것이 맞는가의 문제라기보다는 보통은 각자의 취향과 여행습관에 따라 결정지어진다. 필자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일정을 꼼꼼하게 짜지는 않지만 책과 동영상, 블로그를 통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는 편이다. 공간여행뿐만 아니라, 내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되어 그때 상황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여행이 될 수 있어서 좋다.
여행이란 대개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이 따른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거리를 지나칠 때조차 “아 이런 게 있었네” 할 때가 있는데, 한정된 시간에 계획대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행은 휴양이 아닌 이상, 타인의 경험과 자료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좀더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칸트가 단 한 번도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지 않고서도 자연지리학을 집필하고 강의를 열 수 있었던 것,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가 선실에만 머물렀던 것,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열 편 이상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내가 보고 온 것을 언어와 사진과 영상으로 정리하는 일은 다시 한번 추억과 상상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는 여행의 경험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렇다. 여행은 준비와 기록으로 완성된다.
■ 캄보디아의 두 욕망 ‘앙코르 와트’와 ‘킬링필드’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하나는 '신이 만든 건축물'이라고 하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 ‘킬링필드(killing field)’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쓰여진 돌은 60만 개이며 7톤짜리 기둥도 1800개나 된다. 이 돌은 45킬로미터 떨어진 프놈쿨렌(Phnom Kulen)의 채석장에서 캐고 자르고 다듬은 뒤에, 수로로 운반된 것이다. 사원을 둘러싼 해자의 길이는 5킬로미터가 넘고 폭은 200미터다.
해자에 둘러싸인 앙코르 와트 조감도 사진=구글 아트앤컬처
프랑스 극동연구원에 따르면 30여 년의 건축기간 동안 매일 2만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됐을 거라 추정된다. 앙코르 와트는 데바라자, 즉 왕이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를 더해 '앙코르 와트'라는 이름이 생겼다.
약 600년간 존재했던 크메르 왕국은 15세기 갑자기 사라졌다. 이후 400년간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유령도시'는 1860년 한 프랑스 식물학자에 의해 경이롭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재발견됐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린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국민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대량 학살극이다. 폴 포트가 주도하는 크메르루주는 1975년부터 4년 동안 지식인과 부유층, 그리고 당원, 군인, 인민을 숙청하면서 이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킬링필드는 농민과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욕망에서 비롯했다.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골
헛된 욕망의 결과는 몰락이고 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크메르왕국은 찬란한 문명을 남겼지만 자신들의 사원을 짓고자 하는 왕들의 지나친 욕망으로 쇠락하고 태국의 침략을 받아 무너진다. 후에 베트남과 태국에 계속 시달리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다. 프랑스는 캄보디아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하고 투자와 개발을 등한시했다. 1930년까지 전 국민의 95%가 빈농이나 가난한 어부로 살았다.
크메르루주는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을 도왔지만 전쟁이 끝난 뒤 베트남의 침략을 받는다. 미군의 융단폭격과 킬링필드, 그리고 베트남과의 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로 수많은 국민이 죽고 다쳤다. 캄보디아 지뢰대책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23년까지 제거한 폭발물은 대인지뢰 58만 개를 포함해 약 300만 개라고 한다. 전쟁 상흔의 고통에 시달리고 경제성장 동력이 없는 캄보디아는 아직도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