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관규 순천시장이 민선 8기 3주년 언론인 브리핑을 열고 성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사진=헬로TV 갈무리
정책은 기록되고, 정치인은 평가받는다. 남은 1년, 진짜 순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성과 홍보'가 아니라 '민생과 신뢰 회복’이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7월 1일 민선 8기 3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공, 치유산업 중심의 생태산업도시 비전, 콘텐츠와 우주항공기업 유치 성과 등 화려한 치적이 쏟아졌다. 노 시장의 브리핑자료만 놓고 보면 순천은 이미 전국이 주목하는 모델 도시로 도약한 듯하다.
그러나, 화려한 치적에도 불구하고 순천의 민생과 경제는 갈수록 어렵다. 이제 순천 어디를 가도 “임대”가 붙은 빈 상가를 흔히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미래를 창조해 온 순천의 현 모습이 “임대가 붙은 빈 상가”라면 정부의 민생회복지원금 추경 편성에 화답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의견 수렴 없는 정책과 정치
노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장은 시민이 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시기를 놓쳐선 안 되는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갯벌치유플랫폼, 생태 산업 유치 등 여러 사업은 빠른 추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의견 수렴이나 시의회와의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시민사회에선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노 시장은 올해 4월 순천시의회의 시정질의 답변에서도 “지금까지 경험해봤는데 의견 수렴을 하지만 계속된 쌈박질로 오히려 갈등만 유발된다”며 시민의견 수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 질문을 회피하고, 불리한 사안에는 “법대로”, “추후 설명하겠다”는 말로 대응한 기자회견의 운영방식도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청와대 브리핑이나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등 소통을 강조하는 방식과 대비해볼 때 “윤석열 정권이냐”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거창하게 마련한 3주년 기자회견 자리를 시간상의 이유로 몇 개의 질문만 받고 끝낸 것은 “언론과의 소통을 중시한다”는 노 시장의 진정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특히 마지막에 추가 질문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무슨 얘기하려고 하는지, 한 번 해보세요”라고 말한 것은 냉소에 가깝다.
순천형 생태도시? 아직은 로드맵이 없다
순천을 치유·바이오·문화·항공우주 산업이 어우러진 ‘생태산업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은 분명 인상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방향이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원도심 회복, 인구 유입 등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25개 기업 유치, 국비 확보 등의 화려한 성과가 지역 기반 산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내거나 인재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이어질지도 두고 볼 일이다. ‘외부 유치형’ 모델만 반복된다면 결국 또 다른 ‘전시행정’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지적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올해 두 차례의 “해외연수”에 시민들이 왜 예산낭비라는 반응을 보였는지 한번쯤은 되돌아봐야 한다.
아쉬운 민생경제 지원
민생 경제를 위해 경제진흥과 예산을 지난해보다 105억 원 증가한 255억 원으로 편성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가장 많이 늘어난 항목과 금액은 순천사랑상품권 발행지원으로 94억 원 늘어난 129억 원(발행 기준 1,540억원)과 원도심 상권활성화를 위한 출연금 20억 원이다.
하지만 순천사랑상품권이 사용하기 어려운 노인층이나, 구매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게는 그림이 떡일 수 있는 점을 고려한 보완책 미비와 사회적경제 조직 지원을 9억 원 감소한 8억 원으로 편성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순천시 전체 예산 1조 4800억 원에서 민생경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올해 예산 677조 원에서 민생회복지원금(추경)과 소상공인지원을 더한 20조 원(2.9%)에 비해서는 모자라는 금액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현재의 순천 경제를 생각하면 정부의 추경에 화답하는 민생회복지원금과 소상인을 위한 지원 예산(현 26억 원)을 대폭 늘려야 “시기를 놓치지 않고” 꺼져가는 순천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영호남 메가시티”, 공허한 외침
노 시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순천·여수·광양 경제동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영호남 통합메가시티 실현”을 3대 전략의 하나로 내놓았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영호남 특별지자체를 설립하자”는 주장은 지역소멸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노 시장이 말한대로 가장 낮은 수준의 ‘여순광 경제동맹’도 쉽지 않은 마당에 “영호남 특별지자체”는 공허하다. 여수·광양 시장이 실질적 교류부터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노 시장이 “영호남 특별지자체”를 ‘선언’과 ‘명분’으로 접근한 온도차는 크다.
‘통합 필요성’만 외치는 전략은 자칫 지역 간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2018년부터 최근까지 계속되어온 부산·울산·경남 행정통합이 특별자치단체, 경제동맹 논의를 되풀이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를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피부로 느끼는 생활 통합 우선”을 강조한 김문수 의원의 최근 발언이 더 와닿는다.
행정은 성과로 말하고, 정치인은 신뢰로 평가받는다. 불편한 질문에도 진정성 있게 답하고, 시민과 언론의 비판적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행정의 성과가 신뢰를 받는다.
노 시장이 강조한 “실수는 회복할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분명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신호로 읽히지 않게 하려면, 앞으로의 1년은 '속도'보다 '신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리고 진짜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 민생회복을 위해 피부에 와닿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노 시장의 존재 이유가 공허함으로 와닿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