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순천시의회 본회의에서 스포츠파크부지매입안건을 찬성한 의원이 기립해있다
충청권 사례적용의 오류
지난 6월 9일 순천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정학규 순천시 체육산업과장은 유니버시아드(U)대회를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시는 U대회 개최를 목표로 실무 TF를 구성 중이고, 2028년에 광역협의회에 안건을 상정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2030년에 (광역협의회)협약 체결, 2032년에 유치를 확정해 2037년에 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정학규 과장이 2028년을 준비 시작점으로 삼아 9년 후인 2037년 U대회 개최라는 로드맵을 제시한 근거는 충청권 사례에서 가져왔다.
정 과장은 충청권 U대회 개최 연도인 2027년에서 9년을 거슬러 간 2018년을 준비 시작 시점으로 삼았다. 그 이유는 2018년이 충청권의 체육인프라가 완성됐다고 판단했고, 마침 광역(행정)협의회에 안건을 상정한 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으로 보면, 시작 시점은 9년 전인 2018년이 아니라 7년 전인 2020년 업무협약 체결 시점이다. 2018년 11월 열린 광역협의회는 2025년 U대회 공동 유치를 목표로 했으나, 충남이 재정 문제, 대전은 아시안게임 유치와의 저울질로 빠지면서 한 달도 안 돼 무산됐다. 다시 모인 시점이 2년 뒤인 2020년이다. 그때야 비로소 2027년 대회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이 체결됐다.
4개시도는 2018년 6.13 지방선거 이후 '충청권상생협력단'의 실무TF가 가동 중이라 여기에 U대회 공동유치 추진 업무를 포함시켰지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은 2020년 업무협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설령 2018년을 준비 시작점으로 보아 9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도 충청권과 순천의 출발 배경은 크게 다르다.
2020년 7월 대전시장, 세종시장, 충남북도지사가 2027년 유니버시아드대회 공동 유치 업무협약을 가졌다
순천의 가장 큰 장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충청권 사례와 가장 큰 차이는 순천시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지역구 의원인 김문수 의원이 직접 U대회 유치를 제안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에 화답해 여순광 U대회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의 뒷배가 있어 국비 지원과 여순광 협력의 근거가 확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당시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지원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은 "여순광" U대회 지원이지만 정학규 과장은 여순광에서 남해안남중권으로 더 나갔다. 남해안남중권은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를 말하는데 이는 순천, 여수, 광양, 고흥, 보성, 진주, 하동, 사천, 남해 9개 시군이 모여 만든 광역행정협의회다.
처음부터 연합TF 구성해야
일을 진행하려면 실무TF 구성이 먼저다. 정학규 과장의 말처럼 실무TF를 먼저 구성하되, 이왕이면 남해안남중권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연합TF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든든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충청권처럼 2년간 표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충청권 4개시도가 다시 뭉친 이유를 보면 9개 시군의 참여를 제안한 것은 긍정적이다. 바로 비용 문제다. 올림픽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데 대학생 잔치인 유니버시아드대회가 흑자를 내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모든 U대회 주최 도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회를 개최하려고 한다. 허태정 대전시장도 “기존에 갖춰진 4개 시도의 체육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저비용 고효율 대회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9개 시군이 시설과 비용을 공동 부담하면 "최저비용 최고효율" 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충청권의 경우 경기장 개보수 및 신축 예산은 해당 지자체가 부담하고 운영비 1441억원은 4개 시도가 균등하게 나누어(약358억원) 부담했는데 9개시군이 참여하면 그 부담은 훨씬 줄어든다.
게다가 정학규 과장의 말대로 “남해안남중권까지 공동으로 추진”하면 훌륭한 상생협력의 본보기가 된다. 앞으로 노관규 시장이 추진하는 경제동맹, 특별지자체 등 메가시티 구현의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연합TF가 지금부터 1년 이상 준비해 2026년 안에 실행력 있는 협약을 체결한다면, 2037년대회까지 10년이란 시간이 남는다. 충청권이 업무협약을 체결한 시점과 비교해 보면 충청권보다 3년이 빠르다.
의미없는 샅바 싸움
순천시가 스포츠파크 공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주도권을 잡으려는 샅바 싸움에 가깝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효성이 없다. 충청권 사례에서도 체육시설을 먼저 지었다고 주도권을 얻은 건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개막식이 열리는 대전시나 세종시(폐막식)처럼 당초 계획대로 경기장을 짓지 못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세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급함보다 이창호 바둑처럼 두텁고 신중하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
순천은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 토지매입 예산을 2026년 예산에 반영하고, 순천시의회의 정식 의결 절차를 거쳐, 2026년 토지 매입 후 2027년부터 국제대회 수준의 경기장을 갖춘 스포츠파크를 착공해도 늦지 않다. 동시에 신규 체육시설 건립, 선수촌, 숙박시설 등에 대한 세밀하고 종합적인 실시계획 수립과 예산 확보를 하면 된다. 그리고 U대회 개최가 확정되는 2032년에는 착오 없이 신속하게 경기장 건립에 필요한 부지매입과 시설 착공에 들어가면 된다.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과 오천그린광장은 개폐회식에 훌륭한 장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정학규 과장이 “개최 9년 전인 2018년까지 (충청권이) 체육인프라를 다 완성”했다는 말을 팩트체크해보자.
정학규 과장의 말처럼 충청북도는 2018년까지 체육인프라를 다 완성했을까? 그렇다면 굳이 4개 시도 공동유치를 할 필요도 없었고 충남이 재정 이유로 빠질 이유도 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4개시군 공동유치를 염두에 두고 4개 시군 체육시설을 점검했더니 기존 시설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해 체육인프라를 완성했다는 말을 했을 수 있다.
더 들어가면 확실히 알 수 있다. 2022년 기준으로 U대회가 열릴 경기장은 총 30개다. 충북 11곳, 충남 12곳, 대전 4곳, 세종 3곳이다. 2022년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에 보고한 신·증축 경기장은 9곳이고, 이중 신축 경기장은 4곳이었다. 비용을 아껴 기존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한 것을 두고 인프라를 다 완성했다고 하면 80% 맞는 말이다.
순천시와 공동유치시군도 가능하면 새로 지을 필요 없이 기존경기장을 활용하면 된다. 2008년에 완공된 진주종합경기장은 관람석이 2만석 규모라 다소 작지만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기준에는 부합한다. 개증축하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개막식이나 폐막식도 경기장 내에서 개최하는 기존 관행을 탈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역사상 최초로 야외인 센강 일대에서 진행했고, 세종시는 폐막식을 세종중앙공원에서 치를 예정이다. 순천도 개막식이나 페막식을 순천만국가정원이나 오천그린광장에서 개최하면 비용도 절감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생태유니버시아드 대회로 치를 수 있다.
잘못된 사례적용이 빚어낸 희극 ①, “남해안남중권”
이제 잘못된 사례 적용으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순천시의 주장이 어떤 희극을 불러왔는지 보자.
우선 순천시가 추진하는 ‘순천종합스포츠파크’ 조성 사업이 5월 갑자기 ‘순천 남해안남중권종합스포츠파크’로 바뀌었다.
‘남해안남중권’이란 이름은 2011년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창립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전술한 것처럼 협의회는 전남과 경남 9개 시군이 모여 만든 광역행정협의회다.
협의회에서 연계협력사업을 담당하는 김경태 팀장은 9일 기자와 통화에서 “남해안남중권종합스포츠파크나 순천종합파크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협의회와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말했다.
순천시가 남해안남중권 공동개최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협의회와 상의 없이 급히 사용한 것이다. 단독 졸속 추진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순천종합스포츠파크 부지
잘못된 사례적용이 빚어낸 희극 ②, “공유재산 취득안 가결”
잘못된 사례 적용이 빚어낸 가장 큰 희극은 순천시의회에서 발생했다. 순천시가 상정한 스포츠파크 공유재산 취득 계획안 가결이다.
정상적이라면 스포츠파크 공유부지 취득 예산은 2024년 중기공유재산관리계획에 포함됐어야 했다. 순천시는 2024년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부지도 확정 안 됐고 정확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수시분으로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지역사회에서는 아는 사람은 알 정도로 구체적인 위치까지 회자되고 있었다.
역으로 하면 U대회가 아니었다면 정상적으로 올해 예산에 반영해서 내년에 토지매입을 했을 거라는 말이다. 올해 무리해서 토지 매입을 하는 것과 내년부터 토지매입을 하는 것은 6개월에서 8개월 차이밖에 안 난다. 이 차이 때문에 U대회 유치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침소봉대다.
순천시의회 B의원은 올해 안 되면 내년 예산에 반영하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순천시는 U대회 개최를 감안하면 올해 부지를 매입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을 했다”고 말해 어불성설을 확인해줬다. 날짜를 잘못 계산한 결과로 수시분 공유재산 취득을 상정한 것이다. 얼마나 급했는지 순천시는 현재 투자심사도 하지 않은 상태다.
잘못된 사례 적용으로 인해 순천시의회는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을 맞이한다.
6월 18일 순천시의회는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된 ‘2025년 수시분 공유재산 취득 계획안(스포츠파크 부지매입)’을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이 부의 요구해 본회의에 상정했고, 여기서 찬성 12표, 반대 11표로 통과됐다.
시민 대표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정치적 일탈이자, 순천 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김문수 의원이 절차적 부실과 공론화 부족을 공개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19명 가운데 8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김문수 의원은 SNS에 짧지만 강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모두 기록되고, 기억할 것입니다.”
김문수 순천갑 국회의원
잘못된 사례적용이 빚어낸 희극③, "순천시의회 인사"
잘못된 사례 적용이 빚어낸 공유재산 취득의 희극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7월 3일 순천시의회는 인사발표를 했다. 행정자치위원회에서 3년간 성실히 근무한 A전문위원이 다른 상임위로 조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공유재산 취득과 관련해 상임위원회에 법적·행정적 절차의 문제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이영란 순천시의원은 기자에게 순천시의회의 인사에 대해 비판하는 기자회견문을 보내왔다. 원래 기자회견을 하려 했지만 2차 가해를 우려해 취소했다. 이 의원은 “시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는 행정 절차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감시하고 견제할 책임이 있다. A전문위원은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부당한 인사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개인에 대한 탄압을 넘어, 의회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영란 순천시의원
이영란 의원은 “A전문위원은 수석전문위원이 유력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며 “전문성을 무시한 채 정당한 소신을 폄훼하고 징계하는 문화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고, 순천시의회의 인사 운영이 특정인의 사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강형구 의장은 이번 인사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과 즉각적인 시정 조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전문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자신이 했던 일은 정당했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며 “하는 일이 법적인 부분을 검토하는 것이라 같은 일이 또 생겨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희극의 종착지, 스포츠파크 추경 103억 편성
순천시는 2천402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이 중 103억 원이 스포츠파크 건립 예산으로 포함됐다. 100억 원은 토지보상비이고 3억 원은 위탁수수료다. 7월 16일부터 열리는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25일 본회의에서 의결 확정된다.
스포츠파크 토지보상비 추경안을 다루는 문화경제위원회 의원은 김미연 위원장을 포함해 6명이다. 이 중 지난 번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무소속의 이복남 의원, 민주당의 김영진, 유승현 의원 3명이다. 4명이 찬성해야 가결되는데, 3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할 것으로 보여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본회의에 상정되면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사례 적용으로 빚어진 희극은 올해 추경안 편성이란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순천시의회의 오판과 분열, 부적절한 인사 조치가 발생했고, 향후 저비용 고효율의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균형발전과 지역상생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는 U대회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지금, 국민과 시민의 세금이 졸속 행정으로 인해 불필요한 중복 투자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