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혼한 권 모(43)씨는 최근 열세 살 난 자녀에게 우리은행 청소년 전용 ‘우리틴틴’카드를 발급해주려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편의점 할인과 교통카드 기능이 있어 친구들도 많이 쓰고 있다며 자녀가 간절히 원했지만, 정작 은행 문턱에서 좌절했다.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엄마와 자녀가 같이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WON뱅킹 앱에서 신청을 했더니 “자녀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는 팝업이 떴다. 아래에는 “가족관계증명서(일반)에 자녀가 표시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와,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사망 등으로 자녀의 친권이 변동되거나 자녀가 외국 국적인 경우는 가족관계증명서(일반)에 표시되지 않아 발급할 수 없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혼으로 10년 전에 친권자가 된 권 씨는 ‘우리틴틴’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말에 어이없고 화가 났다.
“아이와 10년 동안 같이 살고 있는데 은행이 ‘부모-자녀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황당하죠. 아이에게도 ‘너는 다른 애들처럼 카드를 만들지 못해’라고 설명해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권씨는 대형 금융기관이 이혼가정 자녀를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금감원과 국민신문고(법원행정처)에 민원을 넣었다. 법원행정처는 “카드 발급 요건 및 절차는 해당 카드 발급 은행의 금융 규정에 따르는 사항으로 답변할 수 없다”며 “가족관계증명서(상세)에서는 자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보내왔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대한민국 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는 일반증명서, 상세증명서, 특정증명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일반증명서는 생존한 현재의 혼인 중의 자녀 정보만 나오고, 상세증명서는 모든 자녀 정보가 나온다. 따라서 권 씨의 경우는 우리은행이 자녀확인을 하려면 상세증명서 정보를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혼, 재혼으로 친권자가 변경된 가정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일반증명서 정보만 가져올 수 있게 한 것이다.
금감원도 8월 1일 민원을 접수했다는 알림톡과 함께 해당 금융회사인 우리은행이 처리토록 이첩했고 그 결과를 권 씨와 금감원에 2~3주 안에 회신할 예정이라고 보내왔다.
우리은행은 8월 20일 권씨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은행은 “일반증명서에는 확인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권씨는 “상세증명서에 자녀 이름이 있다.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우리은행에서는 “비대면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답했다.
권씨는 또 “민원을 제기한지 20일이나 됐는데 개선된 게 하나도 없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개선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우리은행은 “죄송하다,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했다. 권씨는 다른 금융사이트에서도 그런지 알아보려고 토스뱅크에 통장을 개설했는데 별 문제없이 통장개설이 됐다.
시스템구축때 신경만 썼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차별
권 씨는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만 카드 발급이 안 된다는 것은 이중 차별”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이미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회적 약자나 이혼 가정에 대한 시스템 구축과 금융제도 개선은 하지 않고 우리은행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권 씨의 말처럼 초기시스템 구축에서 신경을 쓰거나, 비대면 서비스라 하더라도 은행의 귀책사유인 경우에 예외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혼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한편, 통계청 등록센서스를 통해 살펴보면 2022년 기준 18세 이하 미성년자녀가 있는 한부모 가구 수는 35.5만 가구다. 2024년 기준 다문화가구는 43.9만 가구다. 또한 2024년 기준 재혼 건수는 4.2만 건이며, 2015년부터 누계 재혼건수는 51.1만 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