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국회의원(왼쪽 두번째)은 지난 27일 순천 동부뉴스리더스클럽 집행부와 차담회를 가졌다. 사진=조성진 기자
신정훈 의원은 정치인으로선 특이하다. 특이한 건 맞는데 이 단어만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굳이 말하자면 소신과 꼰대 사이라 할까? 소신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꼰대는 강요한다.
올해 정치 30년째다. 요즘 기술발전 속도로 치면 강산이 다섯 번도 넘게 바뀐 세월이다. 신정훈 의원에게 세월의 연륜을 더해 붙인다면 답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래, 꼰대 같은 소신, 시류를 타지 않는 소신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하는데, 답답하다 할 정도로 올곧다. 듣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너도 그래야 할 걸”하면서 강요하는 것 같다. 일종의 도덕률이라고 할까. 그것도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도덕률 말이다.
신 의원은 1995년 정치에 입문했다. 처음으로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나주에
서 태어나, 나주에서 농민운동을 했으니, 나주에서 전남도의원으로 출마한 건 당연했다. 신 의원 말을 빌리면 당시 나주는 “작대기만 꽂아도 민주당은 당선되는” 곳이었다. 거기서 당선이 불가능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나주농민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신정훈 도의원 사진=신정훈 의원실
“민주당이 왜 저래? 당시 민주당 정치가 헌신하는 정치라 생각 안 했어요. 정치가 좋아지면 세상이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그래서 난 민주당은 안 하겠다. 대신 ‘민주당보다 더 잘하겠다’ 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이변이 일어났다. 31살의 최연소 나이에 민주당 후보를 꺾고 도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나봐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강한 신뢰가 없는 지점을 건드린 겁니다. 민주당이 더 많이 노력했어야 했어요.” 역으로 보면 신 의원이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이 노력한 결과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대부분 당선되면 입당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 의원은 입당하지 않았다. 몇 번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다.
“지방정치 하는 동안은 정당정치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당선 이후에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했다. 농민운동가 출신답게 농민들과 연대하여 농민 권익 보호, 농산물 가격 안정, 지역 교육·문화 인프라 개선에 힘썼다. 도의원 때 만든 쌀 경영안정직불금 제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996년 조선일보는 신 의원을 “논 7백 평 경작하는 평범한 농민, 의회선 집요한 ‘농정해결사’”라고 썼다. 지금 말로 하면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생활 정치, 현장 중심의 민생정치를 한 셈이다.
이후 2010년까지 승승가도를 달린다. 1998년 무소속으로 도의원 재선 성공, 2002년 무소속으로 나주시장에 출마해 당시 현역 시장이었던 새천년민주당 김대동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6년 시장 재선에도 성공했다.
신정훈 의원은 2002년 무소속 기호 7번을 달고 나주시장에 출마했다. 사진=신정훈TV
2010년은 정치적 암흑기다. 나주시장일 때 화훼단지 조성사업과 관련, 자체부담금과 부지 등을 확보하지 못한 자에게 국가보조금을 지급한 일이 생겼다. 잘못된 정책적 판단이 배임으로 판결되면서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감사원이 감사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없다고 했고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3년 만에 사면복권이 됐지만 현실정치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정치, 기존의 민주당보다 더 잘하겠다는 소신을 당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에 입당한다.
지금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3선이다. 3선인데 비주류 같은 주류다. 민주당 의원이긴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보다 더 잘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뛴다.
신정훈 의원이 26일 방울토마토농장을 찾아 수해복구지원을 하고 있다. 사진=신정훈 의원실
정치는 성과내기 경주가 아닌 마라톤
지난 27일 일요일 저녁, 신정훈 의원은 순천을 찾았다. 순천시민들이 모여 만든 ‘동부뉴스리더스클럽(김인수 회장)’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동부뉴스리더스클럽은 “정치는 잔치다”라는 슬로건으로 시민이 즐거운 정치, 생활 속의 정치를 표방하는 시민정치모임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행부와 긴 시간 차담회를 가졌다.
정치인들은 흔히 표를 얻기 위해 장밋빛 공약을 남발한다. 그러나 신 의원은 달랐다. “저렇게 말해도 되나”할 정도로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보다 더 잘하겠다”는 꼰대 같은 소신, “장밋빛” 보다는 우공이산의 소신이 대화를 관통한다.
“정치는 성과내기 경주가 아니고요, 마라톤입니다. 하루 한 뼘씩, 내가 발 딛고 사는 지역부터 바꾸는 게 진짜 정치예요.”
실제 그랬다. 나주시장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친환경급식제도를 실시했고, 지금은 백원택시라고 불리는 마을택시제도도 시행했다. 생활에 뿌리박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제도다. 지방을 통해 대한민국을 바꾸려는 올곧은 소신의 산물이다.
신 의원은 한국전력을 나주에 들쳐메고 왔다. “이제 우리동네 (가난이) 끝났다, 31층 건물 지어놓으면 먹고 살 수 있겠다 했어요” 인재육성을 위해 한전공대(한국에너지공과대학)도 유치했다. 그러나 변화는 더뎠다.
신정훈 의원이 2014년 한국전력 이전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신정훈 TV
“한전 이전이 결정된 게 2004년이에요. 실제 나주혁신도시로 이주해온 건 2014년입니다. 올해 20년 됐는데 산학연 클러스터 생태계가 돌아가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있어야 해요. 30년을 뛰어야 하는 마라톤입니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 마치 부산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란다. “그건 정치권이 만든 프레임일 뿐입니다” 부산 해양경제 생태계가 작동하려면 희망을 갖고 꾸준히 달려야 한다.
전남도지사는 동부권에서?
심은홍 동부뉴스리더스클럽 부회장이 동부권 경제를 걱정했다.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 위기가 생각보다 크다며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다. 신정훈 의원은 조심스럽게 말문를 열었다.
신정훈 의원이 동부뉴스리더스클럽 집행부와 차담회를 갖고 있다. 왼쪽이 김인수 회장, 오른쪽이 심은홍 부회장 사진=조성진 기자
“지금 동부와 서부 모두 어렵습니다. 서부는 인구도 훨씬 적고, 고령화도 심각한 상황이죠. 동부는 서부보다 산업이 앞서 있지만, 최근 여수 석유화학 산업과 광양체철소 위기가 심각합니다. 친환경산업으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 대전환의 문제인데 장치산업이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에너지고속도로도 경제성장의 대안입니다.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는 서부권이 많은 혜택을 받겠지만, 에너지고속도로가 건설되면 동부권의 광양국가산단, 여수산단이 수혜를 보게 됩니다. 현재 전기요금은 어느 지역이나 같지만 앞으로 지역마다 차등 적용될 겁니다. 그러면 전남지역 전기료는 다른 지역에 비해 싸져 동부권 산단이 혜택을 받게 됩니다.”
신 의원은 “비서관이 동부에 오면 말조심해라, 동부에 와서 옷고름을 잘 매야 한다, 서부 정서로 오면 폭 망한다”고 항상 경고한다면서, ‘내년에는 동부권 도지사’란 소문을 의식했는지 에둘러 말한다.
“맨처음 도의원 됐을 때 도지사는 순천 출신의 허경만 당시 국회 부의장이 됐습니다. 재선까지 하셨는데 그 이후 23년 동안 동부권 출신 도지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지사가 서부권 출신이 됐다고 해서 서부권이 꼭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도지사는 권역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남 전체의 미래와 통합을 이끄는 자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동 출신이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소외된 호남권 인사를 안배했습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여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장성, 그리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장흥입니다. 모두 훌륭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도지사도 정책 실천력, 통합 리더십, 전남 균형발전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능력 있는 동부권 인사를 도정 의사결정 구조에 균형 있게 중용해야 합니다”
신정훈 국회의원
신정훈 의원은 특히 이재명 정부처럼 정말 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지자체 평균 지출 평균은 1인당 600만 원인데, 전남은 1인당 1200만원이다.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있는 돈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낙연 전 도지사가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냐며 검증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강조했다.
의대 문제에 관해서도 협의를 통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며, 초점을 의대 자체에 두면 양 지역 모두 폭망하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타운홀 미팅에서 “그것만 해주면 되겠습니까” 할 때 전남을 먹여 살릴 수 있는 30년 대계를 내놓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다.
“신정훈이 되겠어”
밤이 깊어졌다. 처음에 가볍게 인사하려고 마련한 자리가 깊게 들어갔다. 김인수 동부리더스클럽 회장이 시간이 오래됐다면서, 마지막으로 시민들 입장에서 “정치는 잔치다”가 되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물었다.
“’정치는 잔치다’에 공감합니다. 정치를 가까이하면서, 즐기면서 장난감처럼 갖고 놀아야 합니다”.
“도의원과 나주시장으로 있을 때 쌀 경영안정직불금이나 친환경급식제도, 마을택시제도 등은 모두 시민들의 생활에서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생활 속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내고 ‘아 바람이 현실이 되네’ 하는 순간 정치는 즐거워집니다.”
신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과 자주 얘기한다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평소에도 ‘정치는 도구다’란 말을 합니다. 자신과 정치인을 국민을 위한 도구로 써달라는 주문입니다. 동부뉴스리더스클럽이 표방한 ’정치는 잔치다’는 ‘정치는 도구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시민이 전면에 나서 스스로 생활정치를 실현하려 한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해줄 것은 당부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비용(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정치가 좋아지길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신정훈 의원은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이 초청한 관저만찬에 참석했다. 사진=신정훈 의원실
신 의원의 말투나 억양은 부드럽다. 하지만 그 속은 단단하다. 30년의 정치생활이 지역주민의 생활 개선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역정이기에 그랬다.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보다 더 잘하겠다”는 꺾이지 않는 소신을 갖고, 전남이, 세상이 좋아지는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도청 문을 두드린다. 시민운동에서 출발해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친 이재명 대통령의 길이 늘 비주류였던 것처럼 농민운동에서 출발해 도의원, 나주시장, 국회의원을 거쳐 도지사의 길을 가려는 신정훈 의원의 길도 늘 비주류로서 오마주다.
한 시간이 넘는 차담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집행부 한 명이 누구나 들리게 말했다. “오늘 처음 봤는데 팬이 돼버렸어” “내년에 신정훈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