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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산업 여수공장 |
[동부뉴스=조성진 기자] 고흥-순천 방산혁신클러스터가 정부 공모에서 탈락하고, 한화의 대규모 우주항공 투자도 영남권에 집중되면서 전남동부권의 미래산업 전략이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이런 가운데 광주 군공항 부지에 추진되는 896조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여수·광양·순천 등 동부권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린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광주에 들어서지만 여수의 석유화학과 광양의 철강·소재, 순천의 제조업 기반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후방산업과 연결할 경우 동부권 제조업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남연구원이 지난 19일 발간한 JNI 이슈리포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로 바뀌는 전남광주 미래 경제상'은 '광주권 메가팹-동부권 스페셜티 화학소재-서남권 전력반도체'를 연결하는 권역별 분업구조를 제시했다.
방산클러스터 탈락, 우주항공 투자는 영남으로
전남도는 고흥의 우주발사 인프라와 순천의 금속가공·정밀기계 제조업을 결합해 '고흥-순천 방산혁신클러스터'를 구축하려 했지만 방위사업청 공모에서 탈락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사업계획과 범위를 다시 점검해 내년 공모에 재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대규모 민간투자는 영남권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사천을 중심으로 우주항공 허브를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한화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우주항공과 AI 분야에 2040년까지 총 5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당시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우주항공 생태계 완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남해안 우주항공 산업벨트의 한 축으로 전남동부권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동부권에는 이와 비교할 만한 대규모 기업 투자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 896조 투자…동부권은 '소재' 역할
새롭게 등장한 변수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다. 전남연구원은 광주 군공항 부지에 반도체 메가팹 4기와 첨단 패키징 시설, AI 데이터센터 등이 조성될 경우 총 896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메가팹이 본격 가동되면 직접고용 2만명, 정주인구 10만명 규모의 기업형 첨단도시가 형성되고, 전남·광주 연평균 실질성장률도 기존 1.75%에서 최대 3.16%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전남동부권의 역할은 생산공장보다 반도체 후방산업에 맞춰져 있다. 연구원은 동부권에서 정밀화학과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공정 전환과 실증을 지원해 반도체 후방산업을 클러스터화하고, 반도체 설비·장비·부품의 수리·유지보수 기업을 육성하거나 유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수 석유화학, 반도체 소재 전환 가능성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곳은 여수국가산단이다. 여수 석유화학산업은 중국의 생산시설 확대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범용제품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고부가가치 소재산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에는 고순도 화학물질과 특수가스, 세정제 등 다양한 소재가 필요하다. 전남연구원이 동부권의 역할을 '스페셜티 화학소재'로 제시한 것도 여수산단의 기존 산업기반 때문이다. 이미 여수에서는 일부 기업이 반도체 소재시장에 진입했다. 재원산업은 고순도 정제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포토·패키징 공정에 사용되는 고순도 용제와 세정제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여수산단의 기존 화학기업들이 이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경우 광주 메가팹과 여수산단을 '반도체 생산-화학소재 공급' 구조로 연결할 수 있다.
광양 소재·순천 제조업,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나
광양과 순천은 기존 제조업 기반을 반도체 공급망과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광양은 철강을 중심으로 금속가공과 이차전지 소재산업이 집적돼 있어 정밀가공과 소재·부품 분야에서 연계 가능성이 있다. 순천 역시 금속가공과 기계장비 등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산업구조만으로 곧바로 반도체 공급망에 진입하기에는 기술력과 품질인증, 납품기준 측면에서 추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존 기업의 기술 고도화와 함께 첨단제조기업을 새로 유치할 수 있는 산업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순천시가 8월 초 발표한 산업대전환 전략도 이런 방향과 맞닿아 있다. 시는 인재·부지·기술기업을 3대 축으로 삼아 방산·첨단제조·AI 분야 현장형 기술인재를 연간 50명 이상 양성하고, 도시첨단산단과 해룡산단 2-2단계, 미래첨단소재 국가산단 등 3곳 144만평의 산업용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현재 순천과 광양에 반도체 분야의 대규모 기업 투자가 구체화된 단계는 아니다. 결국 기존 제조기업이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증을 확보해 사업영역을 넓히고,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실제로 유치할 수 있느냐가 광주 메가팹과 전남동부권을 연결하는 공급망 형성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산업벨트'가 아니라 실제 투자·고용
전남동부권에서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 기업이 실제 공급망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메가팹과 협력기업이 광주권에 집중될 경우 전남동부권에 미치는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여수의 화학기업이 반도체 소재기업으로 전환하고 광양의 소재·가공업체와 순천의 제조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하면 광주에서 시작된 대규모 투자가 동부권 기업의 매출과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남연구원이 지역 중소·중견기업 육성과 함께 소득의 역내순환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수와 광양은 석유화학과 철강 등 대규모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요 대기업 본사가 수도권 등에 위치해 생산에서 발생한 기업소득 일부가 지역 밖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박성현 광양시장도 지난 7월 시민보고회에서 "광양제철소는 1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지만 광양시는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법인세를 받고 있다"고 언급하며 지역에서 발생한 기업 이익과 지역에 돌아오는 세수 사이의 격차를 지적한 바 있다.
현행 세제에서는 기업 전체의 실적과 사업장별 인력·자산 등을 기준으로 세액이 배분되기 때문에 대규모 생산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라도 발생한 이익이 그대로 지방세수로 귀속되는 구조는 아니다. 반도체산업에서도 생산시설과 기업 매출 증가가 지역 주민의 소득과 소비, 지방세수로 연결되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전남동부권에서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효과는 896조원이라는 전체 투자 규모보다 여수·광양·순천의 기업들이 실제 반도체 공급망에 얼마나 진입하고,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얼마나 지역으로 끌어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동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