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광양시장은 지난 5일 광양시청 열린홍보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글로벌 해운·물류 시장이 거대한 변혁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 항만이 살아남으려면 항만별 특성에 맞춘 빠르고 민첩한 현장 대응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지방선거에 당선되기 전 여수광양항만공사 제5대 사장(2021~2024년)을 지낸 항만·해양 전문가 출신이어서, 그의 반대 목소리에는 더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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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현 광양시 지난 5일 항만공사 통합에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사진=광양시 |
박 시장이 문제 삼은 것은 정부의 '공공기관 기능 개편 태스크포스(TF)'가 지난 4월 성안한 것으로 알려진 통합안이다. 지방공항을 한국공항공사가 통합 관리하는 현행 체계를 항만에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으로, 박 시장은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부권에 본사를 둔 유일한 국가 공공기관"이라며 "항만공사 통합은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이 아니라 동부권 산업 기반과 지역 균형성장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특정 우량 항만으로의 투자 쏠림에 따른 지역 항만 고사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인한 시장 대응력 저하 ▲현장 맞춤형 안전관리 공백에 따른 중대재해 위험 가중 등 세 가지를 문제점으로 짚었다. 광양시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항만통합 반대를 여수시·순천시·광양시 상생협의회의 1호 안건으로 제시하고, 전남광주특별시와도 공동 대응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지역 경제계도 뒤를 이었다. 광양상공회의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여수광양항은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국가 기간산업을 견인해 온 국내 1위의 수출입 관문 항만"이라며 "여수광양항의 독자성은 이차전지·수소·반도체 등 첨단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필수 요소"라고 밝혔다. 광양상의는 정부에 통합 논의의 즉각 철회와 여수광양항만공사의 경영 자율성·권한 강화를 요구했다.
부산·인천·울산도 가세…국회까지 번진 반발
광양의 반발은 다른 항만 도시들의 움직임과도 궤를 같이한다. 지난 6월 16일 부산항만공사(BPA)·인천항만공사(IPA)·울산항만공사(UPA)·여수광양항만공사(YGPA)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임시청사 앞에서 공동 피켓 시위를 열고 "항만공사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초법적 발상"이라며 통합 철회를 요구했다. 이어 지난달 20일에는 4개 지역 약 300개 시민사회단체가 국회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대 목소리는 이달 들어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부산·인천·울산 지역 국회의원 22명이 국회 소통관에서 '항만공사 강제 통합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명의로 반대 입장을 냈다. 조승환 의원(부산 중구·영도구)은 "네 개의 항만은 저마다 수십 년에 걸쳐 고유한 전문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쌓아왔다"며 "정부의 항만공사 통합 논의는 대한민국 해양물류 경쟁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회견에는 여수광양 지역 국회의원은 이름을 올리지 않아, 지역별 정치 지형에 따라 대응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인천항발전협의회 전종해 회장은 "항만공사 통합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의사결정의 거리"라며 "법인 통합으로 지역 항만의 권한을 줄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고, 전재수 부산시장도 통합 문제가 부산으로서도 중요한 사안이라며 업계와 항만공사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애초 이르면 7월 말 통폐합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14일 현재까지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항만공사 설립 당시에도 통합을 고민했지만 결국 통합하지 않기로 했던 사안을 20년 만에 되돌리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전해, 정부 내에서도 신중론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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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광양항 |
여수광양항, 앵커기업에 맞춘 부두운영과 안전관리
4개 항만공사는 모두 항만공사법에 근거해 2004년 부산을 시작으로 2005년 인천, 2007년 울산, 2011년 여수광양 순으로 설립됐다. 정부 주도의 경직된 행정에서 벗어나 기업적 경영기법으로 항만별 자율경영·책임경영을 실현한다는 설립 취지는 네 공사가 공유하는 '보편성'이다. 매년 수천억 원의 항만 운영 수익을 내면서도 정작 소재 지방자치단체 재정에는 유입되지 않고, 시·도지사가 항만위원회 비상임위원 일부만 추천할 수 있을 뿐 사업계획과 투자 방향을 지자체가 주도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역시 4개 항만공사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여수광양항만공사는 다른 세 공사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수성'을 지닌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항만이 떠받치는 배후 산업의 무게감이다. 부산항이 전 세계 수백 개 선사·화주를 상대로 한 컨테이너 환적을 주력으로 삼아 물동량의 절반 가까이가 환적화물인 것과 달리, 여수광양항은 소수의 거대 배후산업이 실어 나르는 원자재·완제품이 물동량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구조 자체가 다르다. 이는 수도권 관문 역할을 하는 인천항의 대중국 교역, 에너지 물류가 중심인 울산항과도 결이 다르다.
여수광양항만공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여수광양항의 수출입 물동량은 2억400만톤으로 전국 1위, 총물동량은 2억7600만톤으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항만 운영의 우선순위가 '더 많은 선사 유치'보다 '광양제철소·GS칼텍스 등 앵커 기업의 생산 일정에 맞춘 부두 운영과 안전관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원유부두·원료부두처럼 특정 업종에 맞춰 설계된 전용시설의 비중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항만공사가 중앙집중형 조직의 한 지사로 편입될 경우, 이런 산업 맞춤형 의사결정 구조가 전국 공통의 획일적 기준에 밀려 원자재 수입과 제품 수출의 물류 흐름은 물론 국가 철강·에너지 공급망에도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광양상공회의소가 통합 반대 논거로 이차전지·수소·반도체 등 차세대 산업 육성을 든 것도, 철강·석유화학이라는 기존 앵커 산업의 자리를 새 산업으로 넓혀가려면 지금과 같은 항만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공공기관 기능 개편안이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광양을 비롯한 항만 소재 지역의 반발은 시청과 상공회의소, 국회로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통합 논의가 어떤 결론에 이를지, 그리고 그 결정이 지역 산업과 일자리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