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조 넘어 50조까지... 사상 최대 규모 구조조정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27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7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면서는 처음으로 지출구조조정의 기준과 추진 방안을 별도로 마련했고, 목표치도 50조원으로 크게 늘려 잡았다. 20년 만에 재정사업평가 제도를 통합재정사업평가로 전면 개편한 결과,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 대상 사업이 새로 도출됐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김명중 기획조정실장은 이날 보고에서 “지출 구조조정 과정 전반에 민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세부 기준을 공개해 객관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도에는 총지출 중 25조~26조원, 올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는 27조원을 구조조정했다”며 “이번에도 4%대 이상의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부처별 감축 내역과 사유를 상세히 공개하고 그 성과를 국회에 보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 장관은 “이미 법규에 따라 내역을 공개하도록 돼 있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구조조정의 배경에 대해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 분모인 국내총생산(GDP)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자인 국가채무와 지출의 효율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생각보다 많은 세입 여건이 형성됐다고 해서 그동안 쓴 사업의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3대 메가 프로젝트·랜드마크에 재원 집중... ‘선택과 집중’의 이면
정부는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재원의 사용처를 밝혔다. 박 장관은 업무보고 인사말에서 “초격차 산업 대전환과 국가적 발전을 위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총력 뒷받침하고, 대규모 랜드마크 사업에도 과감히 투자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입지·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 구축과 지역 인재 양성을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초호황으로 예상되는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청년, 지방, 인재 등에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도 새로 만들 계획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이 특정 지역이나 업종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남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박 장관은 “특정 지역이나 업종·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만들자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반도체 초호황으로 들어온 세수를 단기 부양을 위한 소비성 지출로 써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한 생산적 지출로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정을 특정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은 뒤집어 보면 그 밖의 사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장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허술한 사회 안전망을 보완할 사업도 함께 다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K자형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인지 마스터플랜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3개 사업 냈는데 3개만”... 지자체 국비 확보 전쟁 현실화
예산이 특정 분야에 집중될수록,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부처의 사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춘석 의원(무소속)은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익산시 사례를 직접 소개했다. 이 의원은 “익산시가 가져온 중점 사업 13개 가운데 정부 부처 단계에서 반영된 것은 단 3개뿐이었고, 그마저도 기획재정부 단계에서 살아남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지만, 부처와 예산처를 거치면서 다 걸러지고 중앙정부가 원하는 사업만 채택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우려는 다른 의원들의 질의에서도 반복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수립 중인 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예로 들며 “각 지자체가 반영해 달라고 건의한 사업이 250건, 사업비로는 약 650조원에 달한다”며 “4차 철도망 계획 당시 총사업비 한도(실링)가 43조원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실링을 대폭 늘리지 않는 이상 상당수 지역 사업이 탈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장관은 “3차 때는 25조원, 4차 때는 43조원이었다”며 “경제성과 정책성, 균형발전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 소요를 반영하도록 국토교통부와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국비 매칭 사업을 둘러싼 지자체 간 격차도 도마에 올랐다. 이춘석 의원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매칭 예산이 없어 정작 필요한 국비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반면,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매칭 사업이 나오면 서로 가져가겠다며 독점한다”며 “이대로면 지방정부 사이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장관은 “매칭 비율이 높아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지방 우대 재정지원 원칙에 따라 현재 7개 시범사업에 적용 중인 지방비 부담 완화 조치를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는 향후 지출구조조정 로드맵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운 ‘선택과 집중’식 재정 운용이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느 지역과 사업에 적용될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업무보고에서 확인됐듯 한정된 재원을 놓고 부처와 지자체가 벌이는 국비 확보 경쟁은 하반기 예산 심사 국면에서 더욱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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