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코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부여된 고유 식별 번호로, 일상생활에서 이미 이 코드와 맞닿아 살고 있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을 발급받을 때, 무인민원발급기가 해당 주소를 인식하는 원리가 바로 이 행정코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전남 순천시 매곡동'과 '광주 남구 봉선동'을 각각 다른 행정구역으로 구별하는 것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배송지를 입력할 때 주소창에 지역명이 자동 완성되는 것도 모두 이 코드 체계에 기반한다.
정부와 공공기관 간 정보 공유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다. 건강보험 청구, 복지급여 지급, 지방세 납부 등 행정 전산망 전반이 이 코드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한 마디로, 행정코드는 디지털 행정의 '주소록'이자 '신분증'이다. 이 코드가 바뀌면 그에 연결된 수백 개의 데이터베이스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갱신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합의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남도는 지방자치법의 기존 서열인 '시·군·구' 순서를 고수했다. 법적 근거가 명확하고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라는 논리였다. 반면 광주시는 인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구·시·군' 순서를 주장했다. 광주 5개 자치구의 인구가 전남 일부 시보다 훨씬 많다는 현실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두 주장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시·구·군' 체계는 양측 요구를 절충한 결과물이다. 배열은 전남 5개 시(목포·여수·순천·광양·나주), 광주 5개 자치구(동구·서구·남구·북구·광산구), 전남 17개 군(담양·곡성·구례·고흥·보성·화순·장흥·강진·해남·영암·무안·함평·영광·장성·완도·진도·신안) 순이다. 전남 측이 요구한 '시 우선'과 광주 측이 요구한 '구 포함'이 모두 반영된 셈이다.
현재 등록된 코드 현황을 보면, 광주시는 29번, 전남도는 46번이 부여돼 있다. 광주 5개 자치구는 359~363번, 전남 5개 시는 480~484번, 17개 군은 485~501번이다. 통합 이후에는 이 코드들이 재편되거나 상위 통합코드 아래 묶이는 방식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어떻게 달라지나
통합준비단은 5월부터 2개월간 통합 전산망을 시범 운영하고 오류를 점검한 뒤 7월 1일 정식 서비스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주민등록 전산망, 세금 부과 시스템, 민원 행정 데이터베이스 등이 새 코드 체계에 맞춰 전환된다.
시민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주소 표기에서 나타난다. 지금은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과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으로 각각 표기되던 주소가 통합 이후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매곡동',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봉선동' 등의 방식으로 변경된다. 이에 따라 운전면허증·여권·통장·등기권리증 등 주소가 기재된 각종 공문서와 금융서류를 갱신해야 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일정 유예기간 동안 구 주소도 병행 인정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나 아직 세부 지침은 나오지 않았다.
내비게이션과 지도 앱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카카오맵·네이버지도·T맵 등 민간 플랫폼이 행정안전부의 새 행정코드를 반영해 데이터를 갱신해야 하는데, 그 시점과 범위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전환 공백기 동안 일부 서비스에서 주소 오류나 검색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점과 우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문제는 촉박한 일정이다. 5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가더라도 단 2개월 만에 기존 전산망 전체를 새 코드 체계로 안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전산망 개편을 경험한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이 규모의 행정코드 체계 전환에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시범 운영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개월의 시범 기간은 정치 일정에 맞춘 '출범 우선' 논리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코드가 '의전 서열'로 오용될 위험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준비단은 향후 통합특별시에서는 행정코드를 공식 의전 서열이나 기관장 호명 순서에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원칙 선언에 그칠 뿐, 관련 법령 개정이나 구속력 있는 조례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 행정코드가 각종 공식 행사에서 지자체 서열을 나타내는 지표로 관행적으로 쓰여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현장에서 이 관행이 근절되기까지 적지 않은 갈등이 재발할 수 있다.
민간 부문 연동의 공백도 심각한 문제다. 행정안전부 고시로 공공 전산망은 새 코드를 적용하더라도,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이 운영하는 시스템은 자체 일정에 따라 갱신된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택배 주소 데이터베이스, 병원 원무과 시스템 등 수천 개의 민간 데이터베이스가 서로 다른 시점에 갱신된다면, 주소 불일치로 인한 각종 오류와 민원이 쏟아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합의 과정 자체가 통합의 난이도를 드러냈다. 숫자 배열 하나를 결정하는 데도 두 지역이 수개월간 대립했다. 앞으로 통합재정 운용, 의회 의석 배분, 공무원 인사 통합, 광역교통망 재편 등 훨씬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과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 스스로도 SNS에 '앞으로 합의해야 할 과제가 참 많다'고 토로했을 정도다.